[책마을] 엉뚱한 연구도 좀 하게 놔두라는 일본 석학들

입력 2024-03-29 18:13   수정 2024-03-30 01:09

<미래의 과학자들에게>는 일본의 두 석학이 함께 썼다.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는 오토파지 구조를 규명해 2016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나가타 가즈히로는 교토대 명예교수다. 콜라겐 연구로 유명한 세포생물학자며, 여러 권의 책을 낸 저술가다.

이들은 과학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어야 하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의 기준에 얽매여선 안 된다고 말한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연구, 도움이 되는 연구만 하는 것은 오히려 과학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연구자는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 중 한 명인 나가타 교수가 걸어온 길이 그랬다. 그는 모리나가유업 연구소에 취직해 덜컥 신약 개발을 위한 기초 연구를 맡았다. 회사 내 아무도 바이오를 몰랐다. 무책임하고 무모했지만 그게 자유로움을 만들어냈다. 실수도 많았다. 언젠가 한 번은 도쿄대의 한 교수에게 시험관과 샬레를 가져갔다. “도대체 세포가 늘어나지 않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교수는 기가 막힌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자네, 바보인가? 현미경 초점이 맞지 않았어.”

29세의 나가타는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는 미국 국립위생연구소(NIH)에 속한 국립암연구소에 객원 준교수로 있었는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콜라겐을 연구했다. 그렇게 열충격 단백질 중 하나인 ‘HSP47’을 발견했다. 열충격 단백질은 세포가 열충격 등 스트레스를 받을 때 증가하는 단백질로 암 치료와 연관이 있다.

노벨상을 받은 오스미 교수도 “내가 오토파지를 연구한 이유는 ‘도움이 돼야 한다’는 목표 때문이 아니었다”며 “눈앞에 보이는 세포 내 대상을 분해하는 구조와 그 의미를 규명하고 싶다는 순수한 생각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들의 성취엔 1980~1990년대 연구 분위기가 도움이 됐다. “좋은 연구를 한다고 평가받은 사람에게는 실제 목적에서 다소 벗어나더라도 넉넉한 자금을 내어주던 시기였다. 그것은 시대가 가진 여유이기도 했다.” 21세기 들어 일본이 노벨과학상을 많이 타고 있는데, 그 바탕이 된 연구가 주로 이 시기에 이뤄진 것이라고도 설명한다.

지금은 일본도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도움이 되는 연구’를 장려한다. 다들 몸을 사리고 남들이 가는 안전한 길로만 가려 한다. 저자들은 “사회 전체가 정신적 여유를 갖추는 것이 과학자가 자유롭고 즐겁게 연구하는 데 중요하다”고 했다.

기초 과학에 대한 이야기지만 기업 경영진도 관심을 둘 만한 책이다. 반도체만 하더라도 모바일 시대에 맞는 ARM의 저전력 칩, 인공지능 시대에 급부상한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은 이전에 비주류에 속했다. 관심을 못 받던 것이 시대가 변하며 주목받는 것은 과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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